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왜 인간의 몸으로 이루셔야 했을까.
사람들은 은연중에
예수님은 신이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니까
어떤 고통도 어려움도 인간보다 좀 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진짜 인간처럼 큰 고통과 절망을 느끼셨다는 것을,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부활하셨을 때 육체까지 온전하게 다시 사셨음을
우리가 알게 하고 싶으셨기 때문.
우리의 얕은 신앙은
내 기도에 응답하신 것에 대한 감동,
내 일상에서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
크고 작은 기적을 보며 느끼는 경이로움 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신앙은 지속되기 어렵다.
내 죄와 그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며,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내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것 같아도,
내 일상이 무너져도,
나의 나 된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신앙이다.
나는 진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직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 보다
이기적인 사랑이라며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내가 십자가 형벌을 받아야 될만큼 큰 죄를 지었는데
갑자기 어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서
대신 벌을 받겠다고 십자가에서 고문받다 죽었다고 치자.
나는 감사하다며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를 수 있나.
나는 상처 받을 거 같다. 죄책감이 더 커질 것 같다.
심지어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부모라면 상상도 하기 싫다. 끔찍하다.
사흘만에 부활하셨으니 된 것 아니냐고?
결과가 좋으면 과정 중에 있었던 일과 내가 입은 상처는
모두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는 걸까?
내 사랑이니까 내 방식대로 일방적으로 표현한다.
"너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내가 대신 고통받고 죽은거야"
그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그게 감사하게 느껴질까, 폭력적으로 느껴질까.
사랑의 표현을
이런 잔인하고 이해하기 힘든 19금 버젼 말고
영유아도 아름답게 느낄만한 전체관람가 버젼으로
해 주실 수는 없었던 건가.
전지전능한 신이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대속의 룰을 바꾸는 게 왜 어려운 거지.
나의 믿음은 첫장에서 한장도 넘어가질 못하고 있다.
왜 나는 이 사랑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신이 자기 맘대로 사랑표현하고
넌 그냥 믿고 감사만 하면 된다는데..
미련하게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내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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