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배 설교말씀은 창세기 27:41-45 말씀.
이삭의 쌍둥이 중 장남 '에서'가 차남 '야곱'에게 팥죽 한그릇에 본인의 장자축복권을 팔고,
'야곱'은 엄마 '리브가'의 조언에 따라 '이삭'의 노화된 시력을 속여 '에서'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는데
이를 알게 된 '에서'가 '야곱'을 죽일 듯이 분노를 표출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시킨다.
목사님은 "분노를 이기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45절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의 말씀을 해석하시기를
'에서'가 '야곱'을 죽이면 한 아들만 잃는 것인데 둘을 잃는다고 표현한 것은
'리브가'가 '에서'의 분노를 보고 이미 '에서'를 아들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하시면서 '에서'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리브가'의 사랑을 잃게 된 것처럼 말씀하셨다.
교회에서 설교말씀을 들을때 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 목사님이 생각하는 방식이 정말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누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목사님의 해석과 포인트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갈등은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태 속에서 서로 싸워서
이럴 경우 내가 어찌할꼬 하고 여호와께 물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두 아이가 두 민족으로 나뉠 것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답을 하셨다.
(창세기 25:22-23)
응?? A,B 둘이 싸우면 내가 어찌해야 되냐고 물었는데 A가 B를 섬길 것이라고 답하다니....
동문서답 같은 대화가 성경에는 참 많이 나오지만 해석은 자기 몫이다.
리브가의 자율적인 문제 해결에 참고하라고 일종의 hint를 준 것인가.
아니면 대놓고 B에게 무게를 실어준 것인가.
나는 이 부분이 의문이다.
왜 하나님은 굳이 임신한 엄마인 '리브가'에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 둘 중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란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리고 '리브가'는 남편인 '이삭'에게 이 이야기를 왜 전하지 않은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시점에 이미 '리브가'의 마음 속에 "'야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아들"이라는
프레임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말씀을 듣지 못했어도 '리브가'가 '에서'보다는 다정한 성격의 '야곱'을 더 사랑하게 되었을 수도 있지만,
여호와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경험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 삶에 각인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리브가'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야곱'을 더 애지중지하며 그가 가는 길을 최대한 써포트하려 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축복받은 것처럼 보이는 '에서'를 측은하게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며
그의 편을 들어주려 했을까.
나는 부모가 아니라서 부모의 마음으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잘 모른다.
'리브가'는 전자를 선택한 것 같다. 아마도 여호와의 말씀이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압도했으리라...
'리브가'의 편애는 두 아들의 갈등이 깊어지는 촉매제가 되었을 것이고,
'리브가'와 '야곱'의 합작으로 졸지에 사기사건 피해자가 된 '에서'의 분노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야곱'에게로 향했지만,
사실 배신감을 더 크게 느꼈던 상대는 어차피 매번 거슬리며 언젠가 뒤통수 칠 것 같았던 '야곱'보다는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랬던 엄마 '리브가'가 아니었을까.
나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겠다고 한 자신의 분노표출 때문에 엄마인 '리브가'의 사랑을 잃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브가'가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라고 말한 것은
'야곱'과 '에서'가 서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가 둘 다 다치거나 진짜 죽을까봐,
또는 둘 중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인자가 되어 하나님께 처벌받을 것이 두렵고 무섭다는 표현일 것이다.
'리브가'는 '에서'도 사랑한다.
다만, '리브가'가 '에서'에게 미안해하지 않은 이유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리브가'가 이 사기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에서'가 무사히 장자의 축복을 받았을까?
그렇다면 태아일 때부터 예언하셨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여호와의 말씀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리브가'가 애초에 여호와의 말씀을 '이삭'에게 전했더라면,
'이삭'도 장자의 축복을 행하기 전에 여호와의 의향을 한 번쯤은 물어보지 않았을까?
혹자는 '리브가'가 적어도 '야곱'과 공모하여 '이삭'과 '에서'를 속이는 행동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뜻을 이루시는 때를 기다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순종하는 인간 입장에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신의 큰 그림을 인간인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리브가'의 행동 마저도 그 그림 속 정교하게 계산된 부분이겠거니 한다.
하나님의 원픽 '야곱'을 장자로 옹립(?)하기 위한 '리브가'의 과잉충성식 오버액션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셨다면,
임신 중일 때 '리브가'가 아닌 다른 이해 관계 없는 사람에게 비밀리에 예언하셨을 수도....
예언을 아예 안 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예언과 그 실현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 스토리에서 예언이 빠지면 좀 심심해진다.
아무튼 나는 이 이야기에서 '분노'에 방점을 찍지는 못하겠다.
이게 내가 교회를 성실히 출석하면서도 설교말씀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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